Wednesday, September 12, 2012

가을 노트 / 문정희

가을 노트 / 문정희



그대 떠나간 후 
나의 가을은 

조금만 건드려도 
우수수 몸을 떨었다. 

못다한 말 
못다한 노래 
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 
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 

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 
벼 베고 난 빈 들녘 
고즈넉한 
볏단처럼 놓이리라. 

사랑한다는 것은 
조용히 물이 드는 것 
아무에게도 말 못하고 
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. 

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 
가장 깊은 살 속에 
담아 가는 것이지. 

그대 떠나간 후 
나의 가을은 
조금만 건드려도 
우수수 옷을 벗었다. 
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.

**문정희 시인 : 1947 - 전남 보성, 고려대 교수

No comments:

Post a Comment