가을 노트 / 문정희
그대 떠나간 후
나의 가을은
조금만 건드려도
우수수 몸을 떨었다.
못다한 말
못다한 노래
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
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
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
벼 베고 난 빈 들녘
고즈넉한
볏단처럼 놓이리라.
사랑한다는 것은
조용히 물이 드는 것
아무에게도 말 못하고
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.
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
가장 깊은 살 속에
담아 가는 것이지.
그대 떠나간 후
나의 가을은
조금만 건드려도
우수수 옷을 벗었다.
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.
**문정희 시인 : 1947 - 전남 보성, 고려대 교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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